다회용기 세척 하루에만 14만개
전 세계가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일회용품 대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스타트업 ‘트래쉬버스터즈’는 하루 14만 개의 다회용컵을 세척하는 독자적 시스템을 통해 친환경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기술력과 경제성을 앞세워 일회용품을 실제로 ‘대체’할 수 있는 이들의 도전은 창업, 지속가능성, ESG 경영의 모든 키워드를 담고 있다.
다회용기 기술이 바꾼 폐기물 시장
한국은 세계에서 플라스틱 폐기물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다. OECD 평균 플라스틱 배출량이 1인당 42.4kg인데 비해, 한국은 무려 90.5kg에 달한다. 특히 일회용컵 사용량은 연간 수억 개에 이르고, 공연장, 야구장 등 대규모 행사 이후 쓰레기 더미는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다회용기 제공 서비스’다. 2019년 창업한 트래쉬버스터즈는 “행사 후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줄이자”는 단순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다회용기를 빌려주고, 반납된 컵을 자체 세척 시스템(TSWC)을 통해 다시 순환시키는 구조다. 현재 이 시스템은 하루 최대 14만 개 컵을 세척할 수 있으며, 누적 절감한 일회용컵만 9000만 개에 이른다. 이는 단순 대체를 넘어, 환경문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자동화 세척 시스템으로 만든 경제성
다회용기 서비스의 핵심은 ‘세척’이다. 그러나 기존 세척 서비스는 인건비와 위생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트래쉬버스터즈는 이 문제를 AI 기술 기반 자동화 세척 시스템으로 해결했다. 초고압(100bar), 고온(80도), 자외선 살균 등 6단계 세척 공정을 통해 위생 수준을 기존 일회용컵보다 더 높게 유지하며, 동시에 비용도 절감했다. 다양한 크기와 재질의 컵과 그릇을 처리할 수 있는 설비는 자체 개발됐고, AI는 컵을 자동으로 분류·검수해 불량을 걸러낸다. 뿐만 아니라, 세척과 배송에 드는 자원을 줄이기 위해 물, 가스 사용량 절감 기술도 병행 중이다. 이러한 구조는 결국 “다회용기가 더 비싸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실제 서비스로서의 비즈니스 지속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현재 기업 간 거래(B2B) 비중이 80%에 달하며, 네이버·카카오·하이브 같은 대형 고객사를 확보한 상태다. 야구장, 공연장 등 대형 행사장에서도 점차 일회용컵을 다회용기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친환경 규제가 만든 창업 기회
환경규제는 도전인 동시에 기회다. 트래쉬버스터즈의 성장 배경엔 2022년 이후 강화된 일회용품 규제,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 등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탄소 감축을 위한 친환경 솔루션이 필요했고, 이 수요에 발맞춘 것이 바로 ‘세척 기반 다회용기’ 서비스였다. 곽재원 대표는 “3천 명 규모의 행사에서 100L 종량제 봉투 350개가 필요했지만, 다회용기를 도입한 이후엔 단 8개만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업의 ESG 지표 개선과 직결되는 수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친환경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된 규제 정책과 공정한 경쟁 환경이 필요하다. 일부 지자체가 민간 기업의 기술을 그대로 모방해 지역 세척장을 만드는 사례도 있어, 민간이 공들여 만든 시장이 오히려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트래쉬버스터즈는 하루 21만 개 컵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로 확장 중이며, 향후 화장품 용기, 현수막, 포장재 등 다양한 일회용품 대체 분야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트래쉬버스터즈의 사례는 단순한 ‘환경 보호’ 수준을 넘어, 기술·경제성·확장성을 모두 갖춘 지속가능한 창업 모델의 모범이다. 하루 14만 개 다회용기 세척이 가능한 자동화 시스템은 한국 폐기물 문제 해결의 한 축이 될 수 있으며, 규제 강화 시대에 가장 필요한 실질적 친환경 솔루션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동참을 넘어, 이런 혁신이 확장될 수 있도록 사회·정책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다회용기 시스템이 더 많은 카페, 음식점, 공공시설에 도입된다면, 일회용품 사용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스타트업의 기술력과 민간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